잡동사니

[철학]비판적 글 읽기 (1) 본문

일상생활/문사철

[철학]비판적 글 읽기 (1)

Mariabronn 2016. 8. 10. 11:58

 어쩌다가 흥미로운 글을 읽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쓰고자 한다. 아래 글의 주제는 남녀임금격차인데, 이 분이 쓰신 글과 근거로 제시한 다른 분들의 글은 전부 남녀 간에 생산성 차이가 없는데도 임금 격차가 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블로그에 링크된 다른 글도 언급을 하려댜가 인적자본가설과 차별 가설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기에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인적자본가설은 남녀 간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는 반면, 차별 가설은 남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어떤 지위에 놓여 있나?

http://blog.naver.com/hong8706/220779177332

 

 

 우선 사실명제과 당위명제의 차이점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고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명제는 가치를 함축하고 있지 않다. 반면 당위명제는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미국 내 백인이 흑인들보다 평균 IQ가 높으니 더 똑똑하다"라는 명제가 있다. 일부 흑인들은 듣자마자 발끈하겠지만 저 명제는 내용 자체로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가치함축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명제를 듣고 "흑인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겠군" 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 "멍청한 흑인들은 차별받아도 싸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이 다 가치함축적인 당위명제이다. 사실명제를 당위명제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사태도 인터넷에서 자주 보여 안타깝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생산성 측면에서 평균적으로 볼 때 남성이 여성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사실명제에서의 이야기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신 분은 OECD 통계인 PISA를 내세워서 여학생들의 수학 점수가 세계 수준급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계신다. 하지만 그대로 납득을 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다. 그래서 글을 읽어본 결과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PISA 통계로 남-여간 생산성 차이가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 잘못된 첫째 이유는, 성별 간 상대비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국 여학생들이 세계에서 잘 나간다는 통계만으로는 한국 남학생에 대해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다. 글에서 제시하신 통계 자료를 읽어보니 한국 여학생의 점수보다 한국 남학생들의 점수가 3.31% 높았다. 결국 남-여간 실력 차이가 실존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저 주장이 발생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미 유충은 땅 속에서 사니까 매미 성충 역시 땅 속에서 사는 곤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틀린 사고방식이다. PISA 통계자료는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15세면 중학교 3학년인데, 수학 과목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미적분은 당연히 저 나이에 배웠을 리가 없다. 즉 15세를 대상으로 한 PISA 자료를 가지고 한국 성인 남성-여성 간 생산성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궁금한 나머지 수능 통계자료를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은 자료가 나왔다.

 

 

 

출처 : http://kyu7002.me/291

 

 

 수능 수학 B형 표준점수 상위권에서 남/여 비율이 4~7배 가량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네이버 블로그에 있던 5번 요약 '여성은 수학을 못 한다는 편견 속에 STEM 부문 취업이 어렵다'라는 내용이 거짓이 된다. 실제로 수능 통계로 봤을 때 상위권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을 더 잘 하기 때문이다. PISA가 표본조사인 반면, 수능은 거의 전수조사에 가깝다는 점도 이 주장의 강도를 높여준다.

 

 

 무엇보다 저 글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글에서 제안하고 계신 대책들이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물컵을 들고 가다 물을 쏟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흘린 물을 닦는 방법보다는, 어떻게 하면 물을 안 쏟을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규직 남성 고임금 구조를 개선하자"가 아니라 "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차이가 안 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방법을 찾자"가 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임금 구조부터 개선하면 여성 편견이 알아서 해소될 것이라는 저 주장은 "만들기만 하면 알아서 팔린다"는 세이의 법칙을 떠오르게 한다.

 

 

 참고로 저 분이 블로그에 쓰신 관련 내용 중에는 '남성이 조장한 기업 내 군대문화에서 여성이 고통받고 있다', '강자에게 하는 약자의 혐오발언은 정당하다' 등 한 번은 걸러들어야 할 주장들이 상당수 있기에, 비판적 독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번외로 저 분이 토론에 임하는 태도도 조금은 아쉽다. 공개댓글로 달은 비판은 비밀글로 답변을 하고, 글이 조금 과열된다고 하여 댓글창을 막는다. 기자회견으로 치면 질문한 기자에게만 귓속말로 대답해주고, 기자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기자회견을 취소해버리는 셈이다.

 

 

 남-여 간 생산성 차이에 대해서는 MCM 김성주 CEO의 발언이나, 고 성재기 씨의 영상들도 있으나, 글이 너무 지저분해질 것 같아 생략했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성별 간 생산성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민폐 여직원을 고발하는 글들을 '편견의 시선이 어린 일부 의견'으로 취급하기엔 그 수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직원들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출산이나 육아, 각종 집안일들로 인해 여성이 일하기 힘든 환경인 것 역시 사실이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한다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려는 태도가 남녀평등의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