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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문사철

[도덕]관심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다

Mariabronn 2014. 11. 2. 23:26

 인간이 모두에게나 연민을 느끼는 것은 아니고, 모두에게 동등한 가치를 매기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주변 사람들부터 우선순위에 차등을 두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친한 친구에게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아프리카의 기아 한 명이 오늘도 굶주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비교해보자. 분명 아프리카의 기아도 불쌍하고 슬프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관심을 확 가져가는 쪽은 친구의 교통사고 소식이다.

 

 

 관심의 총량에도 차이가 있다. 아프리카 기아 소식을 들었을 때 직접 발벗고 나서 봉사하러 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유니세프에 매달 후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 관심의 총량이 다르기에, 연민하는 마음은 같지만 연민에 대한 행동이 다르게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역지사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요즘의 생각이다. 상대방과 나의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우선순위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전부를 바꾼다는 가정을 전제하는 것인데, 이 경우 가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틀린 전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은 해였다. 연초부터 기숙사 붕괴 사건이 일어나질 않나. 세월호 사건에 레이디스 코드 자동차 사건. 신해철 씨 사망 소식까지... 당연히 타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에서는 슬퍼하는 내색을 표하지 안으면 마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여기에 역지사지의 주장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들은 단지 내 우선순위에서 조금 뒤에 위치할 뿐이다. 총량의 한게가 있기 때문에 단지 조금 덜 슬플 뿐이다. 그런데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사연들을 고인들로부터 끌어내서 감성을 자극하려는, 우선순위를 억지로 바꾸어 보려는 총량 넘치는 누리꾼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내 생각엔 그게 오히려 고인모독인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나를 비인간적이라고 모함할 일부 누리꾼들이 있을텐데, 그들에게 한 번 되묻고 싶다. "아프리카의 기아들에게 봉사하러 가지 않으실래요?"

 

※ 다시 한 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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