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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공리주의와 칸트, 그리고 안락사

Mariabronn 2014. 11. 19. 16:40

 안락사(安樂死). 그대로 번역하면 편안하고 즐겁게 죽는다는 뜻입니다. 저런 죽음이 존재하는지는 제쳐두고, 오늘은 안락사가 이슈가 되는 이유와 그 배경에 함축된 도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안락사는 주로 식물인간이나 불치병, 혹은 고통스러운 질병의 말기에 걸린 사람들을 죽게 해 주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편히 보내드린다'라고도 하지요. 치사성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생명 유지장치의 전원 공급을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진은 내용과는 관계없습니다. 있을지도?)


 안락사에 대하여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만큼 사신 분인데, 온갖 의료 기기에 매달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느니 편히 보내드리는 게 그 분을 위해서도 유족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며칠 전 대형 사건이 터졌지요. 식물인간 이등병이 깨어나서 폭행이 만연했던 군의 실태를 고발한 사건입니다. 만약 단순히 그 이등병이 식물인간이라고 해서 안락사를 허용했더라면 엄청난 사건 하나가 사회에서 은폐될 뻔 했던 것입니다.


 굳이 이런 사례들뿐만 아니라 갑자기 완치된 불치병 환자라던가, 잠에서 깨어난 식물인간 등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정말 지금 죽게 해 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인간 생명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무언의 압박은 바로 칸트로부터 기반한 도덕 사상에 근거합니다. 칸트는 이렇게 말하지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절대 죽여서는 안 되는 거야!" 이전까지 존재해왔던 기독교적 도덕관을 신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속세의 언어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칸트인데요. 칸트 사상이 어렵다 싶으신 분들은 초중고 과정의 도덕 수업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하는 것', '지갑을 줍더라도 돈을 한 푼도 빼서는 안 된다' 등의 교육 내용과 사고 방식이 모두 칸트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칸트는 왜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한 걸까요? 칸트는 이성적인 인간에게 사고 실험을 제안합니다. "사람을 죽여도 되는 규칙이 있다고 해봐. 그런데 만약 그 규칙이 너한테 적용된다면? 그리고 사회 전체에 적용된다면?" 칸트의 사고 실험을 따라가면, 이 세상 사람은 한 사람도 존재하기 힘들 것입니다. 모두가 살인 규칙에 적용될 수 있으니까요. (이 논리의 이름을 보편화 원칙이라고 부르고, 마찬가지 논리로 칸트는 거짓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사회는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1992년 플로리다에서 무뇌아로 태어난 테레사 앤 캄포 피어슨이라는 아이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만, 부모의 동의 하에 장기를 기증하고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분야의 특성 상 장기이식을 원하는 아이들의 숫자는 많지만, 기증되는 장기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구요. 한 아이를 희생해 여럿의 아이들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과연 이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 플로리다 주 법에 의해 기증자가 죽기 전에는 장기척출이 불가능했는데, 그에 따라 부모의 동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를 기증하지 못하였습니다. 테레사가 죽고 난 뒤에는 장기 손상이 너무 심한 상태였기 때문이지요,


 위의 경우를 읽고도 안락사를 반대하는 논리가 그대로 유지되시나요? 아니면 다시 공리주의적 사고로 물들여지셨나요?


 공리주의자들은 절대라는 말의 사용을 절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항상 마음 속에 저울을 들고 다니면서 매 판단의 순간마다 저울을 재어 봅니다. 그리고 이익이 더 큰 쪽, 즉 저울로 재 봐서 무거운 쪽을 선택합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벤담의 말이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한 마디로 잘 알려져 있지요.


 예를 들자면 대표적으로 안락사의 경우, 아까도 말했듯이 '환자가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 vs '환자가 죽음으로써 주는 슬픔 + 유족들이 누릴 행복'을 계산하여, 후자가 큰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공리주의자들은 안락사에 대해서 찬성합니다.


 여기서 잠깐, 왜 절대라는 말을 싫어하시는지 이해하셨나요? 공리주의의 전까지만 해도 절대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 그들의 논리를 따르면 '상황에 따라'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종합하자면 결국 안락사에 대한 여러분의 고민은 자신의 도덕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나는 칸트 옹호론자인가, 공리주의자인가?' 소중한 생명을 절대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칸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고, 불치병 환자들을 편히 보내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공리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리고 자신이 정말 한 쪽 편만을 들 자신이 있으신가요? 후속 글은 영화 두 편과 함께 여러분의 도덕관을 다시 흔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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