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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공리주의와 칸트, 그 두번째(영화 스포일러 포함)

Mariabronn 2014. 11. 29. 12:15

지난 글 링크 : 공리주의와 칸트, 그리고 안락사

 

 안녕하세요. 죽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저번 시간에 영화 두 편을 가지고 공리주의와 칸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고 해 보았는데요. 영화 Primal Fear와 Music Box입니다.

 

 

          

 

1996년 작품 Primal Fear와 1989년 나온 Music Box

 

 

 꽤 옛날 영화입니다. 사족이지만 돈만 들이부어 눈만 어지럽게 하는 요즘 영화보다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옛날 영화를 저는 좋아합니다. 아! 주제의식으로 들어가서 논점을 다루기 전에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강하니 영화 보실 분들은 보고 오셔도 좋습니다. 글 쓰는 지금은 주말이니 불금 보내시고 집에서 푹 쉬는 중이시라면 더더욱이요.

 

 

 

<스포일러 주의>

 

 

 

 Primal Fear의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정신병자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이중인격자였던 그의 고객은 순수한 자기가 아닌 또다른 나, 즉 악한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그를 믿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정신병자의 무죄를 주장하고, 끝내 케이스를 무효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신병자는 사실 자기가 이중인격자가 아니었다고 고백을 하지요.

 

 

 영화는 주인공 변호사가 살인자와 면회를 마치고 경찰 건물을 쓸쓸히 빠져나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과연 주인공은 자기가 다 이겨놓은 사건을 뒤집으면서까지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나요? 아니면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법정의 승자가 되어야 할까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변호사와 고객 사이에서 일어난 대화는 함부로 밝힐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 내용이 고객에게 불리한 내용일지라도요.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은 직업윤리 상에서는 자신의 고객이 사실 이중인격자가 아니라 잔인한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의식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가 Primal Fear보다 먼저 나왔다는 것입니다. 줄거리도 비슷합니다. 미국 동부에서 아버지와 함께 평화롭게 살던 변호사인 주인공은 어느 날 아버지의 전범 혐위로 고발이 들어오고, 이를 변호합니다. 결국 주인공의 노력으로 이 사건은 아버지의 무죄로 돌아가나 싶었지만,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은 친구 집에서 아버지가 전범이었던 사진을 발견합니다.(여담으로, 오르골이 돌아가면서 증거 자료가 나오는 사진이 매우 소름돋습니다.) 과연 주인공은 어떻게 했을까요? 무죄 판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넘어갈까요?

 

 

 Primal Fear와는 다르게, 이 경우는 변호사가 직접 자료를 찾은 것이기 때문에 판단은 전적으로 주인공의 손에 있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증거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고, 아버지가 유죄 판결을 받는 신문이 배달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핵심 쟁점은 이겁니다. '진실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유를 분석해보면 여러분이 공리주의자인지, 칸트주의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번에 제가 정말 한 입장을 고수할 자신이 있냐고 물어봤던 데에는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진실은 무조건 밝혀져야만 한다'라고 생각하셨다면 이는 전형적인 칸트주의입니다. 딱 보기에도 보편화가 되어있는 정언 명령이네요. 공리주의자였던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신다면 100% 순수한 공리주의자는 아닌 셈입니다. 속으로는 '그래도 뭔가 지켜져야 할 절대적인 가치들이 있다'라고 생각하고 계실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공리주의자도 이 경우 범죄자를 잡아넣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 이익이라 생각할 것 같습니다. 워낙 특수한 경우니까요. 그래서 다른 예를 던져 보겠습니다. 세금전문 변호사인 당신에게 중소기업 사장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탈세한거 걸려서 10억 내야한다. 그런데 5억으로 조금 깎아줄 수 있겠느냐? 성공보수는 2억을 주겠다.' 그런데 변호사인 당신이 알고보니 이 회사는 원래대로라면 세금을 20억 내야하는 회사였다고 합시다. 위에서 '진실은 무조건 밝혀져야만 한다'라고 칸트적 생각을 하신 분들, 이번에는 또 흔들리지는 않겠죠? (아마도 칸트적 생각을 하신 분들이라도 저 숫자들을 열 배, 스무 배 한다면 또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공리주의자들이라면 아마 사실을 숨기고 넘어갈 것 같습니다. 사소한 악을 덮고 넘어가야 변호사 제도, 더 크게는 사법 제도가 사회의 정상적인 채널로써 작동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리주의자들은 '절대라는 것은 없다'라는 맥락에서 진실도 절대적 가치는 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겠네요.

 

 

 이렇듯 진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공리주의자와 칸트의 철학이 충돌하는 입장을 보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도 저 둘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제가 글 쓰면서 여러분에게 일관성 있는 태도를 요구했지만, 사실 공리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저도  처음에는 진실은 어느 경우에도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습니까? 충분한 지적 유희가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덕과 철학이 일상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제가 얘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우리와 떼놓을래도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일단 공리주의와 칸트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구요. 아마도 애니메이션 리뷰에서 공리주의와 칸트를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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