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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알드노아.제로 1쿨 리뷰 - 대타

Mariabronn 2014. 11. 30. 15:02

[덕후지수 : ★★★★☆]


 오랜만에 생각할 거리가 좀 있는, 다른 말로 하자면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일단 장르는 로봇물이구요. 포스터만 보고서는 어릴 때 보았던 흔한 전개를 떠올렸습니다. 로봇 합체물들이 악당과 싸워 정의를 지키는 내용이요. 사실 이 작품의 전개 방식도 그때 그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화성에서 쳐들어 온 악당 로봇들을 주인공이 무찔러 나가는 거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침략자들에게도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있다 살펴볼거지만요. 참고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최종 평을 위로 끌어올려야겠군요. 작품 보신 분들은 계속 읽으셔도 좋고, 안 보신 분들은 이 문단까지만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주인공의 먼치킨급 활약과, 몇몇 인물의 행동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을 제외하면 볼 만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작중에는 제가 다뤘던 안락사를 주제로 한 작은 스토리 라인도 있으니 확인해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도 단순 '뽕빨물'을 보면서 헤헤대는 것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기억에도 오래 남고 더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속칭 오렌지. 주인공의 기체이다.



 작품 시작은, 화성 왕녀가 친선 도모를 위해 지구를 방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왕가에 대해 탐탁찮게 생각하던 세력으로 인해 왕녀가 탑승한 차량이 파괴됩니다. 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지만, 주인공이 쉽게 죽을리가 없죠. 사고로 인해 죽은 것은 변장한 호위대장이었고, 화성 왕녀는 배후의 음모를 꾸민 자가 누구인지 찾아 나서게 됩니다.


 결국 역경과 고난을 딛고 작품 후반부에 모든 일의 흑막인 자츠바움 백작과 마주합니다. 지나치게 주인공이 강력해서 오버 테크놀로지를 가진 화성의 기체들을 마구 파괴해 나가지만, 뭐 그래야 애니메이션이니까 이건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마지막에 백작의 기체를 파괴하여 승리를 거두는 듯 싶었으나 여태껏 왕녀의 충실한 하인인 줄만 알았던 지구인 슬레인이 뒤통수를 치는데...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황당함에 벙 찌는 그 장면.


 핵심 주제로 들어가 보자면, 이 작품의 쟁점은 '한 사람의 죄값을 다른 사람이 대신 받을 수 있는가?'라고 압축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자츠바움이 왕녀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도, 왕녀의 할아버지 즉 화성 황제가 내린 침공 계획을 실행하는 동안 자츠바움의 예비 신부가 사망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츠바움은 이 책임을 왕녀에게 돌리지요. '왕국의 상징인 왕녀를 죽여야 한다'는게 그의 주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인물의 안티테제, 즉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화성인 레예입니다.



 레예는 지구에서 왕녀 테러 사건을 벌인 범인의 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다시피 뒷처리를 위해 아버지가 팽(烹) 당하자, 모든 화성인을 증오하게 됩니다. 이후 화성 왕녀와 합류하여 활동하는 도중에도 별 문제없이 생활하는 듯 하다가, 저 사건의 트라우마가 일어나 목욕하는 왕녀의 목을 조르게 되죠. 딱 제가 말한 핵심 주제입니다. 범행 동기의 모티브도 복수라는 점마저 동일합니다. 레예는 모든 화성인을 미워하지만, 정작 그 대가를 치뤄야 할 사람으로 왕녀에게 응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녀가 진심어린 태도를 보이자 깨닫게 됩니다. 왕녀가 죄값을 치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런데 이 작품에는 이와 동일한 상황에 처했지만 다른 답을 내놓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위의 엔딩 신에서 정작 맞출 놈은 못 맞추는 금발머리 슬레인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 인물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건너온 과학자의 아들입니다. 슬레인은 화성에서 지구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모욕을 받으면서도, 왕녀에게 충성을 다하는 우직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고문을 받는 등의 험난한 과정 속에서 자츠바움에게 사상이 동화됩니다. 저 영상에서 자츠바움과 이나호(지구측 주인공입니다)를 모두 쏜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만,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자츠바움의 왕녀 총격→목걸이 떨어짐→슬레인의 자츠바움 총격→슬레인의 이나호 총격


 사건은 위 순서로 진행이 됩니다. 자츠바움이야 위의 쟁점에 대해 적극 긍정하는 쪽이기 때문에 당연히 왕녀를 쏩니다. 이 과정에서 슬레인과 왕녀 사이의 상징물인 목걸이가 떨어지죠. 이는 어찌 보면 자츠바움을 통해 왕녀에 대한 슬레인의 충성이 파기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슬레인의 물리적 제약과 심리적 제약을 모두 풀어준 것은 자츠바움입니다. 그러면 슬레인이 누구의 편을 들지는 뻔하겠지요?) 우선 슬레인은 여태껏 자기가 지키려 했던 왕녀가 허무하게 당하자 무의식적으로 자츠바움을 쏴댑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계약이 파기되었으므로 왕녀를 감싸야 할 당위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왕녀가 생존 여부를 파악하고 기뻐하기까지했던 이나호를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헤드샷으로 날려버리죠. 이나호와 왕녀가 지구-화성 간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임을 되새겨 본다면,(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쟁점의 문제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진영임을 상기한다면) 슬레인은 자기 의지로 자츠바움의 편을 든 것입니다. 아마 2기가 나온다면 십중팔구 왕녀(비둘기파) ↔ 슬레인(매파)의 대결 구도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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