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신비주의 컨셉의 마케팅으로 화제가 됐던 지브리의 신작을 용산에서 보고 왔다. 할아버지가 늙어서 그런지 자기 자서전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하고 싶은 말만 잔뜩 했다. 모험에 가족애, 동료애, 거기다 반전(反戰) 메시지까지... 2시간 러닝타임에 비해 너무 많은 걸 담아 소화하기 거북했는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주인공이 2시간 러닝타임 중 거의 한 시간 가까이를 모험할까 말까 간을 본다는 것이다. 행방불명이나 움직이는 성 같은 경우 도입부가 비교적 짧고 모험 파트가 빠르게 시작됐는데, 이번 작품은 도입부만 한 시간 가까이 되니 흥미가 생기기는 커녕 피곤하고 지루하게만 만들 뿐이었다. 다시 말해 앞에서 말한 메시지들을 한 시간만에 다 소화시키고 나와야 한다는 것. 3시간짜리 오펜하이머를 볼 때는 시간..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우주소년 아톰의 일부분인 플루토를 애니메이션화 한 것. 작화를 우라사와 나오키가 담당했는데, 이 사람의 전작들인 몬스터와 20세기 소년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지라 이 애니메이션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스릴러 스타일을 전혀 탈피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범인이 누구인지 한껏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엔딩은 반전(反戰) 메시지라는 게 상당히 김이 빠졌다. 로봇 7인방 중 게지히트를 제외한 나머지 6인의 역할이 거의 없었다시피 하다는 점도 애니메이션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같다.

정말 별로였던 로맨스 애니메이션. 터널에 들어가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설정을 가지고 두 남녀가 얽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죽은 여동생을 되찾기 위해(또한 여동생의 죽음으로 사실상 파탄난 가족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터널에 들어갈 유인이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의 동기가 잘나가는 만화가 되기로 남자 주인공에 비해 너무 얕아서 몰입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서도 갑자기 남주와 여주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도 여태까지 떡밥이 너무 적었기에 결말이 뜬금없어 보였다. 러닝타임을 늘려서 빌드업을 착실히 했다면 더 나았을 것 같은 애니메이션.